런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녹색 허파, 하이드파크(Hyde Park). 버킹엄궁전과 켄싱턴궁 사이에 자리한 이 공원은 영국 왕실의 역사와 시민들의 자유로운 목소리가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다. 오늘날 하이드파크는 조깅과 보트타기, 축제와 집회, 그리고 수많은 대화와 토론이 뒤섞이는 ‘살아 있는 광장’으로 기능하며, 런던 시민과 세계인 모두에게 열려 있다.
설계 철학과 도시적 의미
하이드파크의 역사는 1536년 헨리 8세가 사냥터로 사용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의 토지를 몰수하면서 시작된다. 본래 왕실 전용지였던 이 땅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시민들에게 개방되었고, 19세기에는 산업혁명으로 성장한 런던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대중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하이드파크의 설계 철학은 ‘열린 공간(Open Space)’에 있다. 왕실의 상징적 공간에서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으로의 전환은, 영국 사회의 정치적 변화를 반영한다. 특히 1851년 **만국박람회(Great Exhibition)**가 하이드파크에서 열리면서 이곳은 ‘제국의 쇼윈도’이자 ‘근대 도시 공원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조셉 팩스턴이 설계한 크리스털 팰리스(유리궁전)는 기술과 건축, 조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했고, 이후 전 세계 도시공원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하이드파크는 공원 자체가 민주주의와 공론장의 무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단순한 여가 공간을 넘어,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참여의 장을 도시 공간 속에 마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공간 구성과 프로그램
하이드파크는 약 142헥타르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며, 세르펜타인 호수(The Serpentine),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 로즈 가든, 스포츠 필드, 조깅 코스, 그리고 다양한 기념물과 분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르펜타인 호수는 조지 2세 시절 인공적으로 조성된 곡선형 호수로, 오늘날 보트 타기와 수영, 그리고 여름 축제의 중심 무대가 된다. 스피커스 코너는 하이드파크의 상징적 공간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연설할 수 있는 이 장소는 영국의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며, 오늘날에도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목소리가 모이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또한, 하이드파크는 계절에 따라 풍경과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변주된다. 봄에는 벚꽃과 튤립이 만개하고, 여름에는 야외 콘서트와 축제가 열리며, 가을에는 황금빛 단풍 속에서 조깅과 산책이 이루어진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아이스링크가 운영되어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과 경험을 제공한다.
공원은 단순한 자연 공간이 아니라, 런던 시민들의 일상과 축제가 교차하는 살아 있는 무대다. 이는 조경적 관점에서 ‘프로그램과 풍경의 통합’이라는 중요한 설계 원리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사점
하이드파크는 현대 도시공원의 중요한 원리를 우리에게 전한다. 첫째, 공원은 ‘열린 공간’으로서 시민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점. 둘째, 공원은 단순한 여가 시설을 넘어, 공론장과 사회적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 셋째, 계절과 프로그램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서울광장, 베를린 티어가르텐,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파크 등 전 세계 도심 공원의 운영 방식과 철학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특히 스피커스 코너의 모델은 다른 도시에서 공론장적 공간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다.
또한, 하이드파크는 ‘왕실의 땅에서 시민의 땅으로’ 전환된 대표적 사례로, 공공성이 어떻게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보여준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사회적 양극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도시들에게 하이드파크는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제공한다.
스토리텔링과 문화적 상징성
하이드파크는 수많은 문학 작품, 예술, 그리고 대중문화 속에 등장한다. 빅토리아 시대 소설에는 시민들이 산책하고 토론하는 장면이 자주 묘사되었고, 비틀즈, 롤링 스톤즈와 같은 세계적인 밴드가 야외 공연을 펼치며 하이드파크를 음악의 성지로 만들었다.
특히 1969년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 추모 공연은 하이드파크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이 공연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하이드파크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자유와 저항, 문화적 연대의 무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하이드파크는 런던 시민들의 일상 속에 살아 있으며,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 ‘자연 속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무대’라는 상징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이드파크 — 핵심정보
- 국가/도시: 영국 런던
- 면적: 약 142ha
- 조성 시기: 1536년 왕실 사냥터, 17세기부터 시민 개방
- 대표 공간: 세르펜타인 호수, 스피커스 코너, 로즈 가든
- 주요 프로그램: 보트 타기, 축제, 집회, 음악 공연, 스포츠
- 운영 주체: The Royal Park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