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LA의 Blog
세계 곳곳의 도시 공원과 정원을 분석하는 아카이브, 역사와 철학, 도시의 맥락을 담은 이야기, 공간 구성, 문화적 상징

[공간 전략 및 철학] 기억의 팔림세스트 - 대지의 역사를 발굴하는 시간의 조경

공간 전략 E-1

기억의 팔림세스트와
장소의 영

Palimpsest of Memory & Genius Loci: The Layering of Time

The Essence
"대지는 과거의 기록이 중첩된 양피지(Palimpsest)와 같습니다."
지워진 글자 위에 다시 쓰인 역사처럼,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고 현대적 기능을
레이어링하여 대지가 간직한 집합적 기억을 경관으로 소환합니다.
현대 조경에서 **'팔림세스트(Palimpsest)'**는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시간의 가시화'**를 추구하는 설계 전략입니다. 대지를 비어있는 무대(Tabula Rasa)로 보지 않고, 수세기 동안 축적된 사건과 형태의 지층으로 인식합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알도 로시의 집합적 기억과 노르베르그 슐츠의 장소성 이론을 바탕으로, 역사적 흔적을 어떻게 현대적 미감으로 승화시킬 것인지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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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철학의 심층적 배경
1. 집합적 기억과 도시적 유물
알도 로시 (Aldo Rossi)
"도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도시적 유물(Urban Artifacts)'의 집합체이며, 공동체의 기억이 투영된 영속적 실체다."
로시의 이론은 장소의 정체성이 단순히 기능(Function)이 아닌, 그 땅이 기억하는 '형태(Form)'와 '사건'의 영속성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 도시적 유물(Locus): 부지 내 남겨진 낡은 벽, 철골 구조물을 시간의 증거로서 보존하고 공간의 상징적 핵으로 활용합니다.
  • 유형적 영속성: 과거의 공간 구조를 현대적으로 변형하여 장소의 역사적 맥락이 현재와 소통하게 합니다.
  • 집합적 기억의 소환: 특정 장소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경험을 현대적 프로그램을 통해 재경험하도록 유도합니다.
2. 장소의 영(Genius Loci)과 거주
크리스티앙 노르베르그-슐츠
"장소는 단순히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고유한 '성격(Character)'을 갖는다. 설계는 이 장소의 영을 구체화하여 정주(Dwelling)를 가능케 하는 작업이다."
슐츠는 인간이 장소에 동화되기 위해 '방향 설정(Orientation)'과 '동일시(Identification)'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 현상학적 발견: 대지의 지형, 빛의 각도, 바람의 길 등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장소의 정령을 설계의 모티프로 삼습니다.
  • 성격의 강화: 대지가 가진 고유한 대조나 조화를 극대화하여 공간의 영혼을 시각화합니다.
  • 영속적 가치의 현대화: 변하지 않는 자연적 특성과 변하는 역사적 흔적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장소의 연속성을 확보합니다.
3. 팔림세스트: 시간의 적층과 중첩
팔림세스트 (Palimpsest)
"기존의 문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양피지처럼, 대지는 여러 시간대가 겹겹이 쌓인 유기적인 텍스트다."
과거는 지워야 할 오점이 아니라, 공간의 깊이를 만드는 풍부한 레이어(Layer)가 됩니다.
  • 흔적의 레이어링: 사라진 건물의 기초선, 물길의 궤적을 바닥 포장이나 식재 라인으로 중첩하여 '보이지 않는 역사'를 드러냅니다.
  • 시간의 가독성: 신규 시설물과 기존 구조물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켜(Contrasting)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 미래의 역사 준비: 오늘의 설계가 훗날 또 다른 역사적 지층이 될 것임을 인식하고 영속성 있는 재료와 형태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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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설계: 기억을 발굴하는 3대 전술

팔림세스트 전략은 공간의 '새로움'보다 **'깊이'**에 집중합니다. 이를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설계 시스템을 입체적으로 중첩합니다.

Trace Layering (선형의 재현)
과거 건물 기초나 길의 흔적을 포장 라인이나 수경 시설로 재현하여 시간의 궤적을 걷게 함.
Urban Artifacts (오브제화)
폐정수장 탱크, 녹슨 레일 등을 보존하여 장소에 압도적인 '아우라(Aura)'를 부여하고 랜드마크로 활용함.
Exca-design (체적의 발굴)
지표면 아래의 지층이나 지하 구조물을 노출시켜 선큰 가든으로 활용하는 등 입체적 공간으로 전환함.
Masterpiece: 선유도 공원 & 뉴욕 하이라인

**선유도 공원(Seonyudo Park)**은 팔림세스트 조경의 교과서입니다. 폐정수장의 콘크리트 기둥과 벽체를 그대로 남겨 '시간의 정원'과 '전이의 정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인공적 구조물이 식물과 만나 '장소의 영'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최고의 사례입니다.

**뉴욕 하이라인(The High Line)**은 1.45마일에 달하는 고가 철길의 궤적과 야생 식재를 결합했습니다. 버려진 산업 인프라가 시민의 산책로로 변모하며 뉴욕의 '집합적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 팔림세스트의 정수입니다.

📍 기억의 팔림세스트 설계 심화 체크리스트
대지 내 보존 가치가 있는 역사적 유물을 식별했는가?
과거의 선형(기초, 길)이 현대적 디자인과 중첩되는가?
지하의 흔적을 노출하는 '발굴적 설계'가 도입되었는가?
보존된 오브제가 공간의 상징적 '아우라'를 형성하는가?
역사적 수종이나 식재 기법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는가?
오늘의 설계가 미래의 '역사적 층위'가 될 수 있는가?
기존 구조물과 신규 시설이 시간적 대비를 이루는가?
장소의 감각적 특성(Genius Loci)이 극대화되었는가?

과거의 숨결 위에 미래의 역사를 씁니다.

알도 로시가 말한 집합적 기억을 대지에 투영하여, 시민들이 과거의 숨결을 느끼며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적 서사가 담긴 공원’을 제안합니다.

설계는 단순히 예쁜 장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지가 간직한 시간을 증명하는 작업입니다.
과거의 흔적을 공간의 정체성으로 승화시킨 이 철학적 접근이
시간의 깊이를 간직한 위대한 경관을 만드는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본 콘텐츠는 대지의 역사적 가치와 시간의 적층을 통한 조경 전략을 탐구합니다.
사라진 시간을 현재의 공간으로 소환하는 지혜를 함께 고민합니다.